[주제전] 우이신설 스토리 문학 - 박은선 작가 1~3
박은선
2018.07.01~2018.09.30

우이신설 스토리 - 문학

 
작가가 직접 시민을 만나고 대화하며 인근 지역 이야기를 수집해 문학 작품으로 만들어 냅니다. 시민 개개인의 삶과 우이신설선이 만나 문학 작품화되어 새로운 형태의 문화예술을 경험합니다.

박은선 작가


예쁘고 아름다운 걸 아름답게 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지만,
하찮고 비루한 데서 발견한 한 문장은 빛나는 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누구나 마음 터놓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길목

<우이신설 도큐먼트> 노기훈 작가 사진 - 김진수
 

우이신설선을 타고 솔샘역에 내렸다. 개찰구 앞에는 작은 테이블 위에 놓인 시(詩) 항아리가 있었다. 권순영 시인의 <초겨울 꽃밭>을 골랐다. ‘새싹 쑥쑥 모여드는/훈훈한 봄 기다리는가’라는 마지막 구절처럼, 우이신설선에서 시작된 문화의 새싹이 인근 지역과 훈훈한 봄을 이루길 바라며 역사를 나섰다.
근처 공원에 가기로 했다. 길을 잘못 든 것인지 젖은 흙이 덮인 가파른 길을 한참 올랐다. 알고 보니 이 길은 북한산 코스 중 하나였다. 다행히 곧 공터가 나왔다. 부부로 보이는 두 노인만 벤치 앉아있었다. 오후 3시쯤이었다. 원래 이 시간엔 사람들이 없다며 할머니는 내게 잘못 왔다 말했다. 아침이든 저녁이든 6시쯤 돼야 사람들이 많다고 할아버지가 이어 말했다. 두 분은 어떻게 오셨느냐 여쭸다가 ‘건강 때문이지 뭐’라는 답을 들었다. 배드민턴 동호회가 있긴 한데, 오늘도 하려나 모르겠네. 듣든가 말든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할아버지는 일러줬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철조망이 녹색 천막으로 절반 이상 가려진 배드민턴장, 말소리도 제법 들려왔다. 막 들어서려는데, 갑자기 나타난 갈색 푸들 한 마리가 늠름한 자세로 짖었다. 안쪽에는 중년 여럿이 접이식 식탁에 막걸리를 놓고 앉아있었다. ‘그만해, 칸초!’ 하얀색 폴로티셔츠를 입은 중년 남성이 성급히 나와 갈색 푸들을 달랬다. 칸초, 초코크림이 들어있는 매끈하고 동그란 과자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 그날 가져간 노트에 처음 적은 단어였다.
 
“문화라는 건 사람들이 즐기고 인간관계를 맺는 게 아닐까요?”
문화예술철도 우이신설선처럼, 배드민턴 동호회도 하나의 문화라고 생각한다는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1952년생 김진수 님. 칸초가 나를 보고 짖어준 덕분에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할 수 있었다. 인근 주민 89명으로 이루어지고 40여 년간 유지되어 왔다는 배드민턴 동호회. 근처 아파트들보다도 오래된 것 아니냐며 내가 너스레를 떨자, 30년 동안 나온 임원 수준의 몇몇 분들 덕분이라고 그가 웃으며 말했다.
또 70~80세 회원분들이 20~30명 정도 되는데, 배드민턴의 장점은 나이가 많아도 칠 수 있다는 것과 다른 운동과 달리 배우기 쉬운 것이라 했다. 공을 맞히기만 하면 되니까 누구하고나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말이다. 그 무렵 칸초가 자신의 주인과 대화를 나누는 내게 가만히 다가와 냄새를 맡았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질 것만큼 가까운 거리.
“이런 데 오는 사람들은 외로운 사람들이 많아요.”
그에게 이 한 마디를 들었을 땐 사소한 충격을 받았다. 늘 외로워 보이던 친구가 어느 날 문득, 나도 나 외로워 보이는 거 안다고 고백하는 것 같았달까. 적잖이 왁자지껄하던 막걸리 모임도 약속한 것처럼 그 순간에 고요해졌다. 운동할 때만큼은 친하지 않더라도 이야기나 사회생활을 나눌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대부분 내기를 하면서 맛있는 음식도 사 먹고 인간 사이의 정을 느낀다면서.
“나이가 들수록 다른 사람이랑 친해지는 게 어려워요.”
이웃사촌들을 알게 되는 것도 또 하나의 장점이라던 그는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학생 때는 교실의 여러 명 중 친해지고 싶은 이들에게 쉽게 다가가곤 했는데, 이젠 다가서기도 어렵고 어쩌다 함께하게 돼도 본심을 털어놓기 어려워진다는 것. 나는 그런 그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오늘 처음 만난 내게 성심성의껏 본심을 털어놔 주는 그가 고마워졌다.
“각자무치(角者無齒)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뿔이 있는 동물은 이가 없고, 날카로운 이를 가진 동물은 뿔이 없다는 뜻의 말이라고 했다. 즉, 한 사람이 모든 복을 겸하지 못함을 의미한다고. 이어 요즘 놀 거리가 많은 젊은 세대와는 다르게 멍하니 있는 노인들이 많으며 그들이 오고 갈 곳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래도 우리나라에 산이 많아 다행이라며. 산에서는 운동도 할 수 있고 지인들도 만날 수 있어 싫어도 대화가 이뤄지고 국가도 이야기하고 놀 수 있는 장소가 된다고 했다. 누구나 마음 터놓고 이야기 나누고 놀 수 있는 공간이 조금 더 생겨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누구 하나라도 외로운 죽음을 맞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공터에는 여전히 노부부가 벤치에 앉아있었다. 앞선 김진수님의 이야기가 떠올라 괜히 그들 옆에 앉아봤다. 슬쩍 봤던 멧돼지 출몰지역 현수막 이야기도 꺼냈다. 그러자 할머니는 실제로 이 근방에서 멧돼지와 마주친 경험담을 들려줬다. ‘어미 한 마리랑 새끼 네 마리가 나를 보고 막 엉엉거리더라고.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돌아왔지. 그랬더니 영감이 왜 돌아오냐는 거야. 멧돼지를 봤다고 하니까 돌아갈 생각은 안 하고 돌멩이 큰 거 하나를 들고 ‘가자!’더라고. 나는 그 뒤에 숨어서 같이 빠져나왔지. 영감, 그게 여름인가? 가을인가?’
어느새 도란도란 두 분은 그날의 추억을 주고받았다. 휑하고 적막하던 공터에 생긴 작은 소란. 나는 꾸벅 인사를 드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멧돼지를 봤다는 길목을 지나야만 집에 갈 수 있었다. 멧돼지를 마주치면 어쩌나 싶다가 아까 인터뷰를 마치고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인터뷰에 대한 감사를 표하자 김진수 님은, 이 지구상에서 인간이 먼지보다 작은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가 만난 건 인연이라 했다.
노부부가 멧돼지를 만난 것도 그날 서로에게 의지하기 위한, 오늘 이 공터에 앉아 추억을 돌아보기 위한 인연은 아니었을까. 내가 배드민턴장을 빠져나오니 따라오며 아쉬운 듯 짖던 칸초. 누나 간다잖아, 김진수 님이 칸초를 안아들던 모습. 얼마 전부터 내내 비가 왔는데 벌써 군데군데 마른 흙들이 발목에 엉켰다. 잠시 뿌옇게 흐렸다가 사라지는 이 먼지들에도 인연이 있을까 생각하며 공원을 빠져나왔다. 오늘 공원에서 만난 이들과 여전히 인연으로 엮인 채.



모두 즐길 수 있는 놀이터


“나는 말 같은 거 잘 할 줄 모르는데….”
잠시 고민하던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말 같은 거’라는 표현에서 말을 신중히 하는 분일 거라고 짐작됐다. 장소와도 연관 있을 것 같았다. 이곳은 두꺼비 건강원. 말린 약재들이 바깥에 진열되어있는 곳이었다.
 
오후 다섯 시쯤. 성신여대 입구 역 인근의 돈암시장을 찾았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이었다. 앞서 머물다 온 역에서 끝내 인터뷰 대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시장은 슬슬 문을 닫는 분위기였다. 발걸음이 빨라졌다.
문화를 찾고 싶었다. 누구나 인터뷰 대상이 될 수 있었지만, 누구에게나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가게에 멍하니 앉아있는 할아버지, 바닥에 반찬통을 늘어놓고 홀로 식사하는 아주머니. 날이 져 그늘진 가게들은 조금 쓸쓸해 보였다.
아쉬운 마음에 몇 번을 더 오가다 할머니 세 분을 보았다. 도란도란 모여 앉아 화기애애한 분위기. 이분들이 오늘 나의 인터뷰 대상이라는 강한 직감이 들었다. 무작정 들어가 인사를 드렸다. 부담스러웠는지 나머지 두 분은 떠났다.
 
실상 약재를 달이러 오는 분들이 많다는 건강원. 할머니는 한의원에서 약 달이는 직업을 가졌다가 이곳을 차리게 됐단다. 오전에 주문 들어오면 오후에 넘겨주고. 오후에 들어오면 다음날 아침 넘겨주는 게 할머니의 하루 일과.
이 가운데 할머니의 낙이 되어주는 게 있었다. 바로 작은 평상. 인터뷰할 때 내가 앉아있던 곳이기도 했다. 두 사람 정도가 앉을 수 있는 평상을 할머니는 ‘놀이터’라 불렀다. 삼삼오오 모여서 동네, 측근, 건강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간다며.
‘놀이터’야말로 내가 찾던 문화였다. 약재 냄새가 희미하게 나는 이곳에 ‘놀이터’가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게 그저 작은 평상이라는 것은 더욱 상상할 수 없는 일. 발견하지 못했을 뿐, 누구나의 인생에 ‘놀이터’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즐겁지, 하루 종일 즐거워요.”
알고 보니 할머니는 이 지역 본토박이였다. 어릴 적 알던 사람들, 또 어른이 되고 학부형이 되어 알게 된 사람들 덕에 그나마 이곳이 유지되는 것 같다는 할머니. 그냥 노느니 정보도 듣고, 사람들 사는 이야기도 듣다 보면 감사한 마음이 든단다. 바로 이 ‘놀이터’에서.
그냥 베풀지는 못할망정 받는 대가만큼은 해줘야지, 다짐하며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그러나 약을 달이다 보면 누가 많이 아프고 어떻게 됐다는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는 할머니. 본인도 나이가 있으니까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마음이 이상해진다며, 찡한 속을 보였다.
그간 들었던 몇몇 사연을 되뇌는지 잠시 적막이 흘렀고. 바깥의 누군가 할머니에게 손을 흔들며 지나갔다. 다시금 표정이 밝아지는 할머니. 인사를 나눈 분에 대해 여쭤보자 사우나에서 일하는 분이라 소개해줬다.
이어 매일 아침 사우나에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과거, 아들이 재수를 하느라 아침 6시에 하루를 시작했단다. 할머니는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서는 아들이 안쓰러웠다고. 하루는 사우나 간다는 핑계로 함께 나섰다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했다. 그게 매일 사우나를 가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
 
“어떻게 말하면 더 좋을까? 나는 내내 고민해요.”
할머니는 누구에게나 친절하려고 한단다. 어떤 손님이 기분 나쁘게 말한다고 본인도 똑같이 하면, 손님은 자기가 한 건 모르고 싫어한다고 했다. 아이들 키우면서 힘들 때는 ‘저런 손님 안 왔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지만, 마음을 비우니 그런 것도 없다고. 결국 친절하게 하면 손님도 돌아보고 마음으로 느낀 게 있어선지 다시 찾아온다고 했다.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 아침 일찍 아들을 따라나섰던 그 시절, 할머니는 거의 매일 만두를 손수 빚었단다. 아이들이 머리도 많이 써야 하니까 소고기를 듬뿍 넣어서. 막 찌기 시작하면 할머니 남편분이 독서실까지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고. 그렇게 할머니 가족은 모여앉아 만두를 먹으며 대화를 이어왔다고 했다.
이제 와 고백하면 할머니는 만두 빚는 게 참 힘들다고 한다. 그러나 꼴등하던 아들이 10등 하기도 한 게 원동력이 됐다고. ‘노력하면 될 수 있지 않을까?’, ‘4년제 못 가면 전문대가면 돼’ 같은 말들이 내심 도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는 할머니. 살면서 한 번도 아이들한테 ‘이 새끼가!’ 같은 욕을 할머니는 한 번도 안 해봤단다. 잠깐 흘려들은 ‘이 새끼가!’의 어감이 굉장히 찰 져서 ‘내내 고민’하고 말한다는 것이 더욱 와닿았다.
 
“요즘에는 자기 원하는 거 하는 게 최고지!”
소문 날 정도로 공부를 잘했던 딸이 지금은 애들 키우면서만 사는 게 아쉬운 듯한 할머니. 돌아보면 본인도 아이들 입시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그래도 그때를 지나며 ‘다 자기 운명이 있다’고 깨달았단다.
마찬가지로 본인의 이름은 화려하게 살라는 뜻에서 지어졌는데, 지금 이러고 살고 있지 않느냐며 할머니는 한바탕 웃었다. 그래서 성함이 어떻게 되시냐고 여쭤보니, 흰 백, 영화 영, 꽃 화를 쓴다고.
72세의 백영화 할머니. 인터뷰를 마치려다 문득 손톱의 보라색, 연두색 매니큐어에 눈길이 갔다. 이름처럼 세련된 색감이라는 생각에 ‘직접 칠하신 거냐’ 여쭤보니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발에 무좀이 있어 모양이 흉한데, 그걸 감추려 발에 칠하다가 손까지 칠하게 됐다며.
문득 어릴 적 엄마 따라 매니큐어를 칠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엄마는 그런 거 안 칠하는 게 더 예쁘다고 말하곤 했다. 있는 그대로도 예쁠 수 있다는 것을 그땐 왜 몰랐을까. 지금 이렇게 적으면서도 가까운 훗날,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또 나쁜 습관처럼 감추려고 할 것이다.
누구나 놀이터에 대한 기억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유년시절의 놀이터, 내 아이가 뛰어노는 놀이터. 그곳에선 모두 해맑게 웃으면 뛰어논다. 서로에 대한 통성명 없이, 어떤 판단 없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그런 ‘놀이터’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온 할머니는 말한다.
 
“다 좋은 사람들이었어요, 결과적으로.”



우리가 시사하고 싶은 것


“극심한 온도 차의 삶을 살고 있어요.”
 
성북구청에서 공익을 하고 있다는 강민구 씨. 그는 이제야 남들이 말하는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각종 행사에서 사회자로 활약했던 이전과 비교하면, 가만히 앉아있는 거나 다름없다는 지금의 삶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민구 씨. 내게는 그 말이 도약하기 적절한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처럼 들렸다.
그를 만난 건 발등이 데일 듯 무더운 어느 날이었다. 하는 수없이 성신여대 입구 역 인근에 자리를 잡았다. 겉은 한옥인데 안은 캠핑장인 카페였다. 고유한 개성은 억지로 꾸며낼 수 없단 생각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마침 카페 앞으로 검은색 스쿠터를 세우는 한 남자가 보였다. 그와 검은색 스쿠터는 어쩐지 시원하게 느껴졌다. 카페의 에어컨 바람 때문이었을까. 복잡한 도심 속에서 흑말 한 마리가 누비는 걸 발견한 기분이었다.
호기심이 생겼다. 우연히 집어 든 책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를 접한 것 같았다. “저 혹시….” 쉽게 다가가 물을 수 있었던 건 호인 같은, 낯선 이들에게도 숨기지 못할 장난꾸러기 같은 그의 인상 덕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흔쾌히 인터뷰를 승낙했다. 북한산보국문역 주변에 살고 있다는 민구 씨. 개성 있는 이 카페가 자신의 단골가게라는 그의 말에 나는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표현을 떠올렸다.
 
“마이크를 제가 잡는다고 하면 말이 끝난 겁니다.”
 
민구 씨는 연극 연출 전공자였다. 주변에 배우를 꿈꾸는, 흥과 끼가 넘치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자리에서나 마이크는 그의 차지란다. 학교를 휴학하고 사회자로 활동했던 것도 그 덕분이 아니었을까.
‘어떻게 하면 성공시킬까’ 생각하며 ‘반드시 해야 하는 무언가를 찾는 것’이 사회를 보는 나름의 기본이자 정석이었다는 민구 씨. 예를 들어 돌잔치라고 하면, 좋은 호응을 끌어내기 위해 애쓰는 것이 목표. 이를 위해 부모의 성격이나 홀의 특징을 잡아내 메모했다고 한다.
그의 말과 더불어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돌잔치를 머릿속에 그려낼 수 있었다. 이는 어느 자리라도 책임감 있는 태도로 임했던 그의 당연한 성과였다. 나는 훗날 돌잔치를 하게 된다면 꼭 민구 씨를 섭외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처음 만난 사람이 몇 마디 대화로 이런 다짐을 하게 만드는 것도 그의 매력이었다. 이 정도면 진정 어느 자리에서나 마이크 주인이 될 자격이 충분하지 않은가. 그런 나의 의견을 전하자 그는 웃으며 연극 연출을 전공했기 때문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사회를 보는 건 어떤 면에서 연극과 비슷하다는 말이 이어졌다. 그 말을 되뇌다 문득 연극을 한다는 건 무대 위에 시공간을 창조해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마이크를 들지 않아도 어디서나 공간을 인지하고 호흡하고 소통하는 사람인 것이다.
 
“스쿠터는 제약이 없거든요.”
 
더불어 그는 시간에도 섬세하게 반응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도심의 흑말’이라고 느낀 스쿠터가 바로 그 증거였다. 주로 출퇴근할 때 이용한다는 스쿠터는 친구들과 만날 때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한다고 했다. 어느 날 문득 바다가 보고 싶으면 훌쩍 대부도에 가기도 하고, 남산에 올라 커피 한 잔을 마시기도 한다며. 스쿠터가 있어서 차가 막힌다거나 교통수단이 끊긴다거나 하는 등의 시간 제약이 없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느끼는 괜한 불안도 마찬가지.
불안을 자유로 바꿔준 그의 스쿠터는 17년도 정릉으로 이사 오면서 샀단다. 원래 삼선동에 살았다는 그는, 과거 이 지역이 차 없는 사람들한테는 좋지 않았다고 전했다. 물론 버스 노선이 잘 되어있긴 했지만 상당히 불편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다르지 않은 정릉으로 이사를 온 건 등산을 좋아하는 어머니의 로망을 채우기 위한 거였다고 한다. 한 번쯤 산 아래 있는 아파트에 살고 싶다는 것이 그 로망. 무릎 수술을 하셔 이제 등산은 못하시지만 어머니의 만족도는 높으신 것 같다고 했다.
매일 집 앞으로 펼치진 산맥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그의 어머니를 상상해봤다. 몸의 기억과 마음으로 미화된 추억에 힘입어 내내 산을 감각해보려는 노력도.
 
“우이신설선이 산 아래쪽 동네들을 도심으로 이어줬다는 게 의미 있다고 느껴요.”
 
민구 씨는 우이신설선을 두 번 정도 타봤다고 했다. 기관사도 없고 두 칸인 열차를 네 칸으로 늘릴 계획도 안다고 했다. 새삼 놀란 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었다는 거라고.
그와 대화를 나눈 영향인지 나는 그 말도 또 하나의 소통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그간 단절되었던 서로 다른 지역이 우이신설선이라는 연결고리를 만난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에게 어떤 연극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대부분의 연극을 좋아하지만 ‘기승전결이 있는 드라마’라고 말해줬다. 시사하는 바가 있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자체가 몰입감 있게 다가오기 때문이라며.
시사한다는 것. 갑자기 그 말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때마다 사전에 검색을 해보곤 한다. ‘어떤 것을 미리 간접적으로 표현해준다’는 뜻. 문득 성북구청과 돌잔치에서의 민구 씨, 또 스쿠터를 탈 때와 집에서의 민구 씨는 사뭇 다르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다양한 시공간이 강민구라는 연결고리를 만난 것은 아닐까. 그런 방식으로 그는 자연스럽게 훗날 시사할 것들을 수집하고 있는 듯했다. 복학하고 다시 연극 연출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됐을 때 그것들이 더욱 명확하게 자리 잡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의 ‘기승전결이 있는 드라마’를 꼭 관람하고 싶다고 전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갑자기 처음 인터뷰를 나섰던 날이 떠올랐다. 우이신설선을 기다리다 열차정보 외에 ‘문화예술 철도’라는 정체성을 전달하던 방송도.
내가 스쳐가듯 들은 그 방송을 몰입감 있게 기억하는 건 우이신설선이 시사하는 바가 있어서가 아닐까. 마지막으로 나는 오늘, 무더위 내게 시원함을 느끼게 했던 ‘도심의 흑말’처럼 민구 씨가 인상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시사하고 싶다. 그리고 묻고 싶다.
 
당신이 시사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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