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전] 우이신설 스토리 문학 - 박은선 작가 7~9
박은선
2018.07.01~2018.09.30

우이신설 스토리 - 문학

 
작가가 직접 시민을 만나고 대화하며 인근 지역 이야기를 수집해 문학 작품으로 만들어 냅니다.
시민 개개인의 삶과 우이신설선이 만나 문학 작품화되어 새로운 형태의 문화예술을 경험합니다.

박은선 작가


예쁘고 아름다운 걸 아름답게 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지만,
하찮고 비루한 데서 발견한 한 문장은 빛나는 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마을의 애정으로 보존한 역사


약속장소는 정릉2동 주민센터였다. 류광운 선생님은 웃으며 악수를 건넸다. 67세의 인자한 할아버지가 선생님의 첫인상이었다. 선생님은 서슴없이 주민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오가는 사람들 모두 선생님을 반갑게 맞았다. 오늘의 인터뷰에 대해서도 그들은 관심과 애정을 보였다. 덕분에 먹음직스러운 수박 한 접시를 얻기도 했다. 주민센터가 이토록 다정한 곳이었나, 느끼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 동사무소가 원래 도서관 자리에 있었어요,”
 
자꾸만 주민센터를 동사무소로 부르게 된다는 선생님. 명칭처럼 풍경도 과거, 익숙한 모습이 떠오른 듯했다. 옛날에는 이곳에서 밀가루를 받기도 했다는데. 그 이야기가 생소해서 구체적으로 물으니, 수급자들에게 지금은 현금을 지급하지만 당시에는 보리쌀 특히 밀가루를 지급했다는 내용. 우물이 있었고, 주민들이 그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쓸 만큼 내게는 까마득하고 선생님에게는 아직도 생생한 옛날이야기였다.
이어 우리는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원래 도서관 자리에 있었다는 주민센터. 나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곳으로 오는 길을 되짚었다. 주민센터를 찾아오다보면 도서관이 먼저 보이는 구조였다. 조금 더 살피며 와야 주민센터를 찾을 수 있는 게 선생님은 아쉽다고 했다. 더 의미 있는 것이 손쉽게 눈에 들어야 좋지 않을까 한다는 의견. 이는 세계문화유산 정릉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관광객들을 위해서라도 그 주변을 계속 발전시켜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세계문화유산 정릉으로 가는 길목은 큰 차가 올라갈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관광객들이 한참을 걸어 올라간다고. 그러나 도착해보면 다도 정도가 준비되어있을 뿐 실상 별게 없다고 한다. 그들에게 남은 건 또 그만큼 내려와야 하는 일이라고. 국내보다 해외에 더 많이 알려져 있다는 이 문화유산이 이런 상황이라는 게 선생님은 아쉽다고 했다. 기념품이라도 있으면 어떨까 한다면서. 의미적으로 접근하면 역사를 일상으로 가져올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내 품에 역사를 담는 일. 또 평범한 일과에 특별한 한 순간을 더하는 일은, 기념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냐는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날 문득 무언가를 급하게 찾다가 발견되는, 관련된 추억을 떠올리게 해 잠시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집안 곳곳에 놓인 나의 기념품들이 떠올라서. 정릉의 추억도 그렇게 남겨졌으면 하는 마음에 나도 선생님만큼이나 아쉬운 마음이 됐다.
 
“민초들의 생활도 들어가야 그들의 삶이 보이지 않을까요?”
 
세계문화유산 정릉만큼이나 중요한 게 또 있었다. 바로 산신제와 천신제. 선생님은 이를 진행하는데 앞장 선 분이었다. 총무를 맡고 있는 것. 산신제란 산신을 모시는 제사고 천신제란 옥황상제를 모시는 제사라고 한다. 특히 천신제는 정릉2동에서만 지내 유일무이하다고. 음력 10월 1일에 하기 때문에 9월부터는 회의를 시작한다고 한다. 교과서에서 볼 법한 분을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이라고 하자 선생님은 소리 내어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산신제를 계속 해나갈 것이냐, 말 것이냐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고. 과거, 선생님이 아저씨라 부르던 이들이 ‘시대가 변했으니 그만하자’ 했으면 지금까지 못했을 일이라고 전했다. 대대로 행해왔던 걸 자손들에게 물려주고자 하는 마음 덕분에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었던 거라고. 이거야말로 유산이네요, 하고 답하자 선생님은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을 지키고 이뤄낸 것도 하나의 역사라고 덧붙이면서.
 
“산신제는 마을의 문화이자 행사예요. 잔치 같은 거죠.”
 
산신제가 마을의 안전을 위해 지내던 거라면 천신제는 궁중에서 지내던 거라고 했다. 예를 들어 비가 안 내리거나 하면 지냈다고. 그도 그럴 것이 정릉2동 주변은 논밭이었다고 한다. 같은 마을에서 결혼을 많이 했기 때문에 친척도 많고. 어느 집이 상을 당하는 이가 있으면 마을 사람들이 상여를 꾸며 움직이던 시대. 세월이 흘러 너무 힘드니 놋그릇이 스테인리스로 상여가 역무차로 바뀌긴 했지만. 선생님이 중학생이던 시절까지 상여가 움직였다고 한다.
시대극에서나 볼법한 풍경. 그 가운데 아직도 산신제가 유지되고 있는 건 결국에는 나의 일이라는 신념 때문인 듯했다. 자칫 종교단체행사로도 오해되는 이 산신제를 선생님은 문화행사라고 강조해 말했다. 종교는 개인의 안녕을 위한 것이라면 문화행사는 마을의 안녕을 위하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결국 마을의 안녕을 나의 일처럼 여긴다는 말이다. 그런 마음의 사람들이 많이 모여살기에 아직도 산신제는 유지되고 있는 것이라 절실히 느꼈다.
 
‘지금 네 곁에 있는 사람, 네가 자주 가는 곳, 네가 읽는 책들이 너를 말해준다’ 괴테가 한 말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인사를 나누다 선생님의 백발이 눈에 띄었다. 요즘은 염색을 많이 해서 백발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염색은 보다 젊어 보이기 위해 본래의 백발을 감추는 것이 아닌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머리카락은 자라난다. 흑발이 백발이 된다. 나는 그 백발이 선생님을 말해준다고 느꼈다. 보존하고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노력. 고리타분하지 않느냐고 묻던 선생님의 이야기들을 나는 존경심으로 들었다. 그리고 그 노력이 한 개인, 한 마을의 일로만 남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되었다.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며 소통하는 일


“놀라시겠지만 본명이에요.”
 
고사리. 그 이름이 당연히 예명일 거라고 생각했다. 재난문자가 올 만큼 비가 많이 내리는 어느 날. 고사리 작가님과 나는 서울시 제2시민청에서 만났다. 솔밭공원역사에 있는 문화공간이었다. 역사에는 미처 발을 떼지 못한 사람들이 출구를 서성이고 있었다. 비가 와 그런지 더욱 한적한 그곳에서 우리는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작가로서 나름의 뜻을 담아지었을 거라 생각했던 이름. 그 뜻에 호기심을 안고 왔던 나는 작가님의 이름이 지어진 일화를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가 남다른 분인 듯하다며 시작된 이야기. 아버지는 작가님 이름에 ‘리’를 넣고 싶어 하셨다고 한다. 박경리 작가를 좋아하셔서 그런 것 같다는 짐작. 하지만 ‘고’라는 성과 어울리면서 ‘리’로 끝나는 이름 중 아버지 마음에 든 이름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들른 식당에서 ‘여기 고사리 좀 더 주세요’하는 주문을 듣고 ‘그래, 고사리!’하는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그렇게 지어진 딸의 이름 고사리. 어머니도 아무 말 없으셨다는 걸 보면 역시 남다른 분이라 생각한다며 작가님은 웃어 보인다.
 
“자아를 튼튼하게 만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는 개성 있는 이름 ‘고사리’로 평생을 살아온 느낌. 아버지가 지어준 소중한 이름이라는 생각과 이름 하나로 관심을 받았던 경험 덕분이라고 한다. 물론 놀림도 엄청 받았다고 한다. 특히 초등학교 때는 조용히 집에 가는 날이 없을 정도. 놀리던 사람, 말리던 사람이 같이 놀리는 건 다반사였고, 밀치거나 물건을 던지는 등 장난에 폭력성이 나타나기도 했다고. 다행히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는 잠잠해졌지만 늘 이 개성 있는 이름 덕분에 작가님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하루는 선배들이 찾는대서 가보니, 이름을 듣고 궁금해서 불렀다는 말을 듣기도 하고. 슈퍼에서 과자를 얻어먹기도 하고. 축구를 하다 말고 떼거지로 손을 흔드는 이들에게 내내 인사를 건네는 등. 이 모두가 이름 하나로 얻은 특별한 순간이었다. 그래서 개성 있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 반갑다는 작가님. 물론 개성 있는 이름으로 고생하시는 분들도 많을 거라고 헤아린다. 같은 이름인 고사리로 살면서 괴로운 분들도 분명 있을 거라며. 같은 이름이어도 다른 생을 산다는 말에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나와 이름만 공유한 모호한 이들을 하나 둘 떠올려본다.
 
“집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이어 작가님으로부터 두 개의 집에 대해 들었다. 하나는 벌써 2년째 거주하고 있는 우이동의 작가님 집. 원래 일산에 거주했다는 작가님은 인터넷에서 지금 사는 집을 발견했다고 한다. 아직 비어있다는 말에 의문이 들 정도로 괜찮아 보였다는 집. 오래 비어 있을만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싶었지만 혹시나 해서 집을 보러 왔다고. 그런데 오는 동안 본 이 동네의 아름다운 풍경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들으며 느낀 바로는 그 풍경이 이사의 결정적인 이유였다고 느꼈다.
다른 하나는 작가님이 전시를 했던 집이다. 백 년 가까이 된 일본식 목조주택인 집은 일제강점기 작곡가 채동선이 살다가 떠났고, 어느 대학교수가 인수해 살다가 떠난 곳이라고 한다. 이 집을 만나기 전 작가님은 표현방식의 하나로 자연스럽게 설치미술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공감각적으로 경험한 걸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싶었던 것 같다고. 그래서 빈 집 혹은 폐가로도 불리는 공간을 찾고 있었는데. 워낙 퇴짜를 많이 맞아 기대도 하지 않던 중 이 집에서 전시를 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어요.”
 
벌레, 쥐, 거미줄, 썩고 있는 바닥. 그 자체가 아름다웠다는 작가님. 이 느낌을 사람들에게 보여줘야겠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전시의 목적이 되었다고 한다. 한 달에 걸친 설치와 전시, 몸도 많이 상했지만 집과 많이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내가 사진으로 접한 이 전시의 특징은 집 전체가 비닐에 씌워져있다는 거다. 그걸 두고 염을 하는 거 같다는 표현이 붙었을 정도. 집을 치우고 비닐을 씌우자 만질 수 있게 되고 내부의 공기도 점점 좋아졌다며 작가님은 집을 회상한다.
문득 나는 잠자는 사람 가까이에 있으면 들리는 숨소리를 떠올린다. 주변이 고요해야 들리는 그 소리. 집에는 틈이 굉장히 많은데, 그 틈으로 집이 숨 쉬는 걸 느꼈다는 작가님의 말 덕분이다. 그 증거가 바로 걸을 때 바스락거리는 소리라고. 이어 우리는 소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치우고 비닐을 씌우고 집의 숨소리를 들었던 이 과정이 나름의 소유였던 것 같다고 작가님은 말한다. 평소 물건을 소유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는 작가님. 결론은 희망 같은 감정, 사람의 마음을 소유하고자 물건의 가치가 화폐로 지불되는 것 같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 나가야 하는 것, 더 노력해야 할 일은 소통인 것 같아요.”
 
감정과 마음을 담는 방식의 소유. 관람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하니 작가님은 내년 전시에 대해 소개해준다. 이사를 테마로 한 전시. 사전적 풀이를 보면 이사는 물건들을 싸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의미라고 한다. 작가님의 소통은 그다음부터 시작된다. 사람들이 떠나고 남은 건물들과 재개발 때문에 무너질 집들. 사진 액자가 걸려있던 흔적, 아이들의 자라는 키를 표시해둔 흔적 등. 건너간 사람들을 다 기억하는 빈 집을 작가님은 여러 번 쓰다듬어본 듯한 감정을 전한다. 집은 존재 자체가 무너지면 죽는 것인데, 그마저도 실은 이사를 가는 것 같다면서.
이 소통의 경지는 쉽게 오른 것이 아니라 느낀다. 페트병이 사라지는 건 100년이라는 말에 혼자 몇 달을 요구르트에 대해 생각했던 나날들. 독립과 동시에 깨닫게 된 1인분의 많은 부산물들. 나무, 도자기, 플라스틱에 이어 비닐까지 모두 무언가를 담아낸다는 사유까지. 무심한 누군가는 ‘대체 뭘 하는 거냐’며 이해하지 못할 일을 나는 예술이라 부르고 싶다. 뚜렷한 결과물이 있는 게 아니니까 끊임없이 대화를 해야 하지만 자기 삶을 존중받길 원하는 이상향은 비슷할 거라고 작가님은 말한다. 다 다른 삶을 사는 가운데 소통하는 것. 그것이 예술가의 숙명이라고도.



어느 한구석 물든 분홍빛

햇볕이 다른 날보다 뜨겁고 빛나는 하루였다. 그늘 하나 없는 횡단보도에 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건너편 카페 유리창 너머로 한 사람이 보였다. 왠지 저 사람일 것 같다는 확신과 함께 들어선 카페. 연극배우 신선영 씨는 그날의 햇볕만큼 빛나는 미소로 나를 반겼다.
 
“그냥 동네를 사랑하기로 했어요.”
 
사랑스럽다는 느낌이 물씬 나는 선영 씨는 ‘사랑’이라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삼선동. 한성대학교 인근에 있는 어느 아기자기하고 예쁜 집에서 4년째 살고 있다는 선영 씨. 그 집은 선영 씨가 맨 처음 연극을 한 연출의 신혼집이었다고 한다. 처음 봤을 때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는 그 집. 연출이 아이가 생겨 더 큰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그 집에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물려받았다’는 말이 떠오른다. 공간뿐만 아니라 어느 한구석도 가만 내버려 두지 않았을 신혼부부의 설렘과 정성도 고스란히 선영 씨에게 전해졌다고 느낀다. 사랑을 많이 받은 이들은 티가 난다는 게 새삼 확인되는 순간이다.
연극의 메카인 대학로와 가깝고, 눈앞에 보이는 낙산공원을 ‘나의 베란다’라고 느끼게 해준 집. 이전까지 방 개념의 자취와 달리 처음으로 집 개념을 갖게 해준 곳이라는 말이 인상적으로 남는다. 20대 어느 시기,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독립만으로도 즐거운데. 누구든 탐낼 만큼 예쁜 집에 아름다운 풍경이라니. 얼마나 들뜨고 행복했을까. 사람 사는 동네의 느낌도 참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4년 동안 살다 보니 다소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고. 부쩍 ‘요즘도 연극해요?’하고 말을 건네 오는 이들이 많아졌는데, 혹시 술 취해 기어가는 것도 누가 보면 어쩌나 걱정된다며 우스갯소리를 한다.
 
“와 이런 곳을 마을버스 타고도 올 수 있다니!”
 
길상사를 처음 방문했을 때 선영 씨의 반응이다. ‘길상사’라고 적힌 마을버스들을 스치듯 보기만 하다가 마침내 가본 길상사는 너무 좋았다고 한다. 책 한 권을 들고 와서 오래 읽다가고 싶은 분위기. 또 백석 시인과 그의 연인 김영한의 일화를 듣고 상상하는 등. 이 모두가 마을버스를 타기만 해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선영 씨에게는 이 동네를 또 한 번 사랑하게 된 계기였다고 한다. 첫눈에 반해 모든 게 좋아 보이는 사랑과는 다르다는 말.
문득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다는 말이 떠오른다. ‘사람은 자기 몸의 화학적 반응을 따라 사랑에 반응한다’는 전제하에, ‘사랑의 콩깍지’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세로토닌과 도파민의 유효기간이 길어야 3년이라는 내용. 이를 바탕으로 돌아보면 이 동네에 대한 선영 씨의 사랑은 유효기간이 1년 정도 지난 것이다. 인터뷰의 시작을 열며 ‘그냥 동네를 사랑하기로 했다’는 말이 이젠 이런저런 계기 없이도 사랑한다는 말은 아니었을까.
 
“무대 냄새가 좋았어요. 쾌쾌하고 습기 찬 냄새랑 노란 조명도.”
 
이 동네와 인연을 맺게 해주고, 사랑하게 해준 연극에 대해 선영 씨에게 묻는다. 답변을 들으니 이 사랑은 소유와 깊은 관계가 있다 느낀다.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지는, 오감을 다해 특별히 알아가는 사랑. 이렇게 사랑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 싶어 물으니 한참을 되뇐다. 초등학교 1학년 학예회 때 처음 연극을 했던 거나 중학교 때 누구나 그렇듯 막연한 마음으로 연기를 해보고 싶었다고 생각한 것, 가야금을 전공해 예술고등학교를 준비하면서도 연기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까지. 다양한 이유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선영 씨 스스로도 맞는 답변이 아닌 듯 고민에 빠진다.
인터뷰를 마칠 즘에야 생각났는지 들뜬 표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고향 평택에 살던 시절. 고등학생이던 선영 씨는 엄마와 함께 대학로에 놀러와 <라이어>라는 공연을 봤다고 한다. 공연이 너무 재밌어서 나중엔 웃기는 배우 아저씨가 멋져 보일 정도로 빠져 봤다고. 그때 선영 씨는 남모를 다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꼭 연극을 해서 여기 살아야지!’하는 다짐. 잊고 있었지만 그 어릴 때 다짐처럼 선영 씨는 지금 내내 바라던 연극을 하며 꿈의 공간이었던 이곳에 살고 있다. 무려 4년 동안이나 그냥 사랑하면서.
 
“아직도 꿈을 이뤄나갈 여지가 있는 것 같아요.”
 
너무 익숙해져서 여행하고 돌아온 뒤, 근처만 와도 안도감이 느껴질 정도로 편하고 지루해진 동네. 그리고 이젠 아주 치열하지 않게 천천히 오래 하고 싶은 연극. 선영 씨는 이 마음 모두 사랑하는 마음인 것 같다고 정리한다. 자신의 상태를 잘 살펴 사랑하는 것들과 떨어지고 싶지 않다면서. ‘연극을 참 사랑한다’는 누군가의 말을 칭찬으로 듣고, ‘많이 사랑받았다’는 말을 죽기 전에 듣고 싶다는 선영 씨. 이토록 사랑이 넘치는 이가 사랑하는 매 순간들을 관객으로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진다. 사랑이라는 것이 내 마음 어느 한구석 물든 분홍빛이라 할 수 있다면 선영 씨는 분홍빛 마음으로 사는 이가 아닐까. 들여다보지 않아도 드러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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