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전] 우이신설 스토리 문학 - 이상우 작가 1~3
이상우
2018.07.01~2018.09.30

우이신설 스토리 - 문학

 
작가가 직접 시민을 만나고 대화하며 인근 지역 이야기를 수집해 문학 작품으로 만들어 냅니다.
시민 개개인의 삶과 우이신설선이 만나 문학 작품화되어 새로운 형태의 문화예술을 경험합니다.

이상우 작가


시를 통해 쓸 수 있는 내용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는 사람.
다만 쓸 수 있는 감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시란 마음을 하나의 형태로 빚고 있는 것,
다 빚어내는 것이 아닌 다만 꾸준히 빚고만 있는 것.
소원이자 기도인 시를 오래도록 쓰고 싶은 사람이다.



우이의 장소들 1. 정릉시장에서

삶의 감각을 회복시키기 위해, 사물들을 더 잘 느끼기 위해, 나는 정릉시장에서

   몇 해 전 정릉 근처를 헤매다가 길을 잃은 적이 있다. 그때 나와 친구는 정릉에 가기 위해서 만났지만 실은 그곳이 정릉이 아니더라도 만났을 것이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정릉의 반대편에서 헤매기 시작했고 굽이굽이 골목길들을 헤매다가 무심코 정릉천과 정릉시장까지 따라 내려왔다. 그때의 심정을 장황하게 묘사하자면 이런 것 아닐까. 큰 결심을 하고 벚꽃놀이를 하러 나선 날 도무지 벚꽃이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한다. 무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헤매고 있는데 엉뚱한 골목에서 온 가지에 꽃을 매단 커다란 벚꽃 나무 한 그루를 만난다. 그것은 작지만 기적 같은 일. 사소하기에 오히려 기적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일이다. 우리는 오래된 순댓국집에서 미뤄둔 끼니를 먹고 정릉천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그때 처음 정릉천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정릉에 정릉시장이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정릉시장이라는 것이 처음 생긴 것은 2010년이기 때문이다. 그 전에도 상가들이 모여 있었지만 정식으로 시장이 된 것은 불과 10년도 되지 않았다. 정릉천도 본래 덮여있었고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 이제 막 10년이 되어가는 중이다. 또한 정릉시장은 예전만 해도 마을버스를 타고 한참 들어가야만 접근이 가능한 교통이 불편한 시장 중 하나였다. 하여 우이신설선을 통해 정릉시장에 접근하는 것은 내게 새로운 일이었다. 우이신설선이 아니라면 이렇게 비 오는 날 시장에 오는 것은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북한산보국문역 2번 출구에 내려 바로 보이는 방향에서 반대로 쭉 직진해 내려오자 5분도 채 안 되어 시장이 나왔다. 비가 내리는 날인데도 사람이 제법 많았다. 정릉시장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정릉천이 시장을 관통한다는 것이다. 개천을 중심으로 핏줄처럼 뻗은 여러 골목. 골목마다 다양한 품목의 상가들이 입점해 있다. 비 내리는 골목을 따라 내려오는 것은 마치 만화경을 보는 것 같았다. 골목은 저마다 한 개씩의 렌즈와 같았고 그 안에는 저마다 다른 가게와 풍경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물건을 사러 돌아다니는 것을 넘어 새롭게 감각을 두드리는 일종의 운동과 같았다. 인터넷이나 대형 마트를 통해 이루어지는 쇼핑은 편리하지만 그만큼 우리가 소비하는 물건들의 단면만을 보게 한다. 이미 다 손질 되어서 나온 생선이나 고기들 사이에서 본래 우리가 대상으로부터 느꼈던 삶의 감각들마저 조금씩 파편화된다. 하여 그 편리함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들이 축소되어있고, 사람들마다의 이야기가 사라져있다. 러시아의 문학이론가인 쉬클로프스키는 “삶의 감각을 회복시키기 위해, 사물들을 더 잘 느끼기 위해, 이른바 예술이라고 불리는 것이 존재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이 말을 시장으로 조금 바꿔서 변용해보았다. “삶의 감각을 회복시키기 위해, 사물들을 더 잘 느끼기 위해, 이른바 시장이라고 불리는 것이 존재한다.”고.
 
   철제 기름통을 엎어놓고 그 위에서 장기를 두는 아저씨들. 비 오는 정릉천 물놀이를 하지 못해 주변을 서성이며 아쉬워하는 아이들. 오래된 가게들과 분명 청년들이 차렸을 가게들의 공존. 한옥이 이어지는 골목들과 복개된 하천을 따라 새롭게 만들어진 전통시장. 북한산을 뒤로 두며 정릉시장의 새로운 입구가 되어준 북한산보국문역. 나는 앞으로 계속 만나게 될 우이의 장소와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골목을 몇 번씩 다시 헤맸다. 처음 만나는 장소의 설렘. 그리고 그 장소에서 이따금 발견하게 되는 익숙함에 놀라고 애정하며.



우이의 장소들 2. 창경궁로를 따라 성신여대입구역까지

'북앤라이프스토리’ :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으로

   앞치마를 입고 수줍게 손님을 맞이하던 북앤라이프스토리의 장자건 사장님. 동네서점이지만 인근 주민들을 상담하는 일도 하고 있다는 그는 사람에 대해 말을 할 땐 조심스럽지만,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말씀해주셨다. 그럴 때 그의 두 눈에선 천천히 수줍음이 거둬지고 삶을 애정 하는 사람 특유의 따뜻한 확신 같은 게 묻어나왔다. 장자건 사장님은 본래 동양철학을 대학원에서 박사까지 전공한 연구자였고 이를 바탕으로 상담을 하신다고 하셨다. 자연스레 대화는 상담과 그때 다루는 동양철학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는 우리 동양철학에선 사람이 저마다 가진 기운을 통해 관계를 맺는다고 보는데 이러한 소통을 통해 사람들이 상호 교류 속에서 인과적으로 맞이하는 변화를 ‘운’이라고 설명했다. 운은 하나의 미신이 아닌 인생에서 겪는 수많은 관계에서 형성되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인과적 변화고 이를 바탕으로 사람들과 상담한다는 그의 설명에 나는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그때 사장님께 저절로 인연에 대해 묻게 되었다.
 
   그날 북앤라이프스토리를 인터뷰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우연이었다. 그것은 내가 일부러 의도한 것이기도 했다. 시작하는 주엔 사랑하는 사람과 첫 데이트를 준비하는 사람처럼 우이를 찾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방문해야 할 곳을 여러 군데 선정해보았고 그중에서도 내가 반드시 찾아가야 하는 곳과 그 이유를 몇 번씩 적어보기도 했다. 따라서 내 기억 속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정릉시장에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이를 위한 과정으로 반드시 우이신설선을 타보자는 목표도 세웠다. 나의 준비가 첫 만남의 근사한 선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두 번째 주에는 전적으로 우연에 기대보고 싶었다. 아니 이제 생각해보면 그것은 인연을 만나고 싶었던 마음이었을 지도 모른다. 막연히 우이 쪽을 향하는 버스에 탄 뒤 ‘성북’이라거나 ‘강북’ 또는 ‘우이’라는 말이 들어간 아무 정류장에서 내리기로 했다. 그래서 내린 곳은 바로 ‘성북문화원’ 정류장이었다. 핸드폰으로 찾아보니 창경궁로에 위치한 곳이었다. 나는 동네의 이름만 보고 바로 지도를 꺼버렸다. 막연히 한양도성이 보이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큰 길이 아닌 골목들을 헤맸다. 한옥 주택들과 양식을 파는 레스토랑들. 기와집에 달린 간판엔 조금 뜬금없이 보이는 ‘치과’라는 진료명. 그리고 여러 길을 돌고 돌아 언덕을 내려온 곳에 바로 북앤라이프스토리라는 작은 동네 서점이 보였다. 처음엔 인터뷰를 하기 위해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동네서점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한쪽 서가의 두꺼운 동양철학서들이 개인적으로 내 눈길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가게 곳곳을 둘러보다 마치 어떤 인연에 천천히 매료된 사람처럼 장자건 사장님께 정중히 인터뷰를 부탁드리게 됐다.
 
   사장님이 말하는 관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인연에 대해 물어보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에 기인했을지 모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라는 것도 그렇다면 우연이 아닌 사람과 기운과 기운, 그리고 관계와 관계가 닿는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인과적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생각 속에서 북앤라이프스토리에서의 인연은 마치 겹겹의 우연이 쌓인 필연처럼 느껴졌다. 사장님은 이어서 사람과 사람이 서로의 관계 속에서 주고받는 영향에 대해서 말씀을 풀어나갔다. 자신은 다만 동양철학 연구자로서 이러한 것들을 영향들을 판단하고 정리해준다고 말이다. 사람 사이의 구설수, 인연, 그리고 상호 소통, 이를 통해 이제 좋은 시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그런 상담을.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말씀 하나를 들려주셨다. 결국 이러한 학문의 이유는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에서 시작된다고, 이것은 어떻게 해야 잘 살까를 고민하는 인간적인 학문이라고. 그 말 속에서 나는 처음 그의 눈길에서 읽어냈던 삶에 대한 애정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이유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것은 희망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오늘 내가 기대했던 인연도 더 나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희망. 어떻게 해야 우이의 사람들과 더불어 잘 얘기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됐을 수 있단 생각도 들었다.
 
추신
 
   그날 나는 사람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날 온종일 발걸음을 옮기며 본 사람들의 모습은 이러했다. 한낮의 창경궁로에선 예쁜 가게들과 골목을 누비는 사람들의 여유를 찬찬히 바라볼 수 있었다. 한옥과 빌라가 섞인 주택가. 그리고 개인 상점들이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있는 거리. 소위 유명한 핫플레이스처럼 지나치게 북적거리는 것은 아니지만 적당한 소란과 다른 이를 존중하는 도란도란 한 말소리로 어우러지는 풍경. 하지만 성신여대입구역 앞의 아케이드에서는 여느 상점가들이 그렇듯 높은 건물과 간판 불빛, 시끄러운 음악 사이로 모든 소리들이 크게 들렸다. 한낮의 창경궁로와 달리 한밤의 성신여대입구역 아케이드에선 어떤 사람의 말도 정겹게 들려오진 않았다. 그곳은 불과 10분 거리에 지나지 않는데 말이다.
   이때 내 머릿속엔 무심코 장자건 사장님의 말 중 하나가 떠올랐다. 사람은 어떤 지역에서 태어났는가가 중요하다고 한다. 공자는 중국 강남에 귤의 씨앗을 심으면 귤이 되지만 그것을 강북에 옮기면 탱자나무가 자란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 생각 속에서 한밤의 시끄러운 풍경을 나는 다시 보게 되었다. 그들은 어쩌면 한낮엔 창경궁로 앞의 도란도란 한 귤나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성신여대입구역 아케이드에서 그들은 화려한 탱자나무로 다시 자라나게 된 것이다. 사람은 어떤 장소에 있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장자건 사장님은 내게 말했다.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어요.’ 그렇다. 우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영향을 받으며 한낮엔 귤나무가 되지만 한밤엔 탱자나무가 되기도 한다. 나는 앞으로 만날 우이의 장소와 사람들을 다시금 생각했다. 어쩌면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씨앗들이 때로는 귤나무로 어떨 때는 탱자나무로 내게 만개하기를 기대하며 말이다.



우이의 장소들 3. 정릉에서 보이는 골목길에서 왼쪽을 끼고돌아

 
‘K2인터내셔널’ - 조금 쉽시다.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요.
<우이신설 도큐먼트> 노기훈 작가 사진 - 오오쿠사 미노루

“‘나’ 최선을 다해도 본질적으로 게으른 사람. 남들보다 조금 느리단 걸.”
 
   이십대 초, 나는 일 년 동안 집밖에 나가지 않았다. 많이 아팠고,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병을 앓고 있었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 한동안 사람을 만날 수 없었다. 힘들었다. 누군가에게 면접을 통과하거나, 공모전에 당선되거나, 돈벌이를 끝없이 구해야 살 수 있는 삶. 돈을 벌고, 그와 관련 된 능력을 증명해야 제대로 된 성인이 됐다는 인정을 받는다. 그 인정 투쟁이 내 사지를 꽉 누르는 것 같았다. 내가 남들보다 조금 느리다는 걸. 최선을 다해도 본질적으로 게으른 사람이란 걸 알게 됐다. 그런 사람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세상에 기여하는 일에 동참하고 싶어졌다. 이후 여러 가지 사회 활동에 참여했다. 그리고 스물여덟 살이 됐을 때 한 청년 단체에서 니트족과 히키코모리를 돕는 사회적 기업 K2인터내셔널과 인연을 맺었다. 구직을 하지 않는 사람들. 또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걸 포기하고 집 안에 숨어버린 사람들을 돕는 곳. K2인터내셔널을 만나고 니트족에 대해 고민하면서 이십대 초의 내가 그런 상태에 놓였었단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됐다.

“‘그러면 성북으로’ 정릉시장에서의 인연 
 
   정릉을 내려와 보이는 골목길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K2인터내셔널이 있다. 이렇게 적으면 정릉을 잘 아는 사람들은 조금 의아해 할 것이다. ‘그곳은 주택가인데 사회적 활동을 하는 단체가 있어?’ 하고 말이다. 그렇다. 어느 골목길에서나 볼 수 있는 작은 주택에 바로 K2가 있다. 나는 오랜만에 오오쿠사 미노루상을 만났다. 그는 여전히 사십대 초반이라고 믿기 힘든 동안과 함께 웃으며 나타났다. 여전히 이십대 같다는 나의 농담과 함께 우리의 인터뷰는 시작됐다.
 
   K2인터내셔널이 한국에서 처음 터를 잡은 곳은 합정 인근이었다고 오오쿠사 미노루상은 말한다. 홍대 근처가 청년들이 많이 모인다는 생각에서 그랬다고. 그러나 홍대 앞은 변화가 극심하고 인연을 맺기가 힘든 장소였다고 한다. 이 동네에 살고 있다는 느낌, 즉 지역에 대한 애착을 갖기가 힘들었다고. 성북문화재단과 인연이 있었던 K2는 성북이 지역에 더 밀착할 수 있고 사람들과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러면 성북으로’ 이사를 가자는 결단을 내렸다고 한다. 2014년 초 K2 인터내셔널 코리아는 성북으로 이사를 했다. 그때 정릉시장에는 마침 신시장 사업단이라는 활동이 있었고 K2인터내셔널은 시장에 돈카페라고 하는 가게를 내게 됐다고 .(돈부리 등을 파는 일식 가게.) 그때 그는 청년들의 힘으로 시장이 활성화되는 걸 직접 지켜보았다고 한다. 가게를 내면서 상인회 회장님께 많은 도움을 받았고 여러 인연을 맺게 되었다고.
 
어느 곳이든 사회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있어요

   그에게 물었다. 한국과 일본 니트족의 차이가 혹시 있냐고 말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이 학업에 대한 압력이 더 강한 것 같다고. 하지만 한국과 일본을 떠나 니트족이 겪는 어려움의 본질은 개인을 존중하지 않고 사회 규범에 맞추라고 강요하는 전체주의라고 그는 말했다. 사회적으로 어려운 사람은 어떤 사회든 일정 비율로 존재 가능한데, 사회적 규범에 모두가 동조하라는 압력. 그런 전체주의가 니트족이 겪는 어려움을 낳는다고. 그리고 그것은 개인을 존중하지 않는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말이다. 그런 말과 함께 ‘사람은 평가를 받을 때 스트레스를 받고 판단 기준이 자신 안에 없어진다’는 말을 덧붙였다. 특히 한국 청년들은 부모에 대한 복종심이 일본에 비해 더욱 강한데 이런 사회 규범에 대한 압력들이 자신만의 기준을 없어지게 만든다고. 그때 나는 내가 겪는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사소하게는 밤에는 일찍 자야된다는 내 부모님과 작업을 하기 위해선 새벽에 깨어있어야 한다고 말을 하는 나. 넓게는 계속 어딘가에 작품을 투고하고 나 자신과 내 실력을 증명해야 하는 일. 면접장에 나가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입증해야 하는 일. 나를 둘러싼 내가 아닌 기준들 속에서 내가 어떤 규범을 갖게 됐는가를 말이다. 미노루상은 말했다. 개개인의 능력이란 중요하지만 그것을 통해 사람의 인권이나 가치를 판단할 수 없다고 말이다. 그 말은 어떤 사람이든 인정하는 사회에 대한 얘기처럼 내게 들렸다. 사회적 규범과 그를 토대로 한 능력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닌. 우리 모두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회에 대한 얘기처럼.

좀 쉽시다천천히 갑시다이런 걸 하기 위해.”

   K2인터내셔널의 일원이 아닌 바로 한 사람으로서 오오쿠사 미노루상이 해결하고 싶은 고민에 대해 물었다. 그는 조금 망설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요. 지금 사회는 모두에게 100m를 강요하는 사회에요. 그런데 인생은 마라톤이거든요. 이런 사회에서 좀 쉽시다. 천천히 갑시다. 이런 걸 하기 위해 쉬면서도 할 수 있는 작업을 만들고 싶고, 이를 위한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요.’ 그는 그런 말과 함께 지역 커뮤니티에 대해서 말했다. 옛날에는 조금 이상한 친구도 동네에서는 같이 놀았다고. 그런 사회가 남아있었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만화 <도라에몽>의 ‘진구’ 에 대해 말했다. 진구는 공부도 못하고, 힘도 약하고 그런 친구인데 그냥 같이 노는 것이 <도라에몽>이란 만화라고. 그때 나는 그에게 한국의 ‘깍두기’에 대해 아냐고 물었다. 내가 바로 그 깍두기였다고 소개하면서 말이다. 나는 운동도 못하고 게임도 못하기 때문에 어릴 때 종종 따돌림을 당했다고. 그런데 지금까지 나랑 만나는 오래 된 친구들은 그때 나를 두고 ‘깍두기’라고 취급해 준 친구들. 즉 나를 ‘진구’로 대해 준 친구들뿐이라고. 이런 대화 끝에 정릉시장에 대한 얘기가 다시 나왔다. 정릉시장엔 그런 사회가 남아있다고. K2인터내셔널이 운영하는 돈카페에는 대부분 종업원이 일본인인데 시장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하곤 한다고. 이를 뛰어넘어 이젠 인사를 안 하면 너희는 왜 인사를 안 하니? 하고 물어본다고 말이다. 대학가가 아닌 이런 골목에 외국인이 많은 가게가 있다는 것은 분명 조금 다른 일인데 이를 두고 오히려 인사를 권하는 사람들. 그런 정을 느낄 수 있는 ‘오지랖’ 그것이 정릉에 K2인터내셔널이 계속 있는 이유 같다고.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물었다.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그는 말했다. ‘고립되어 있는 젊은 사람들, 그대로 있으면 해결이 힘들어요. 혼자가 아니고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추신
 
   내가 아주 힘든 상태에 있었다는 걸 오랜 뒤에 알게 되었다. 그때 나를 그 상태에서 일으켜준 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 나보다도 나를 고민해주는 많은 사람들. 내가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개의치 않던 사람들. 오오쿠사 미노루상과 헤어진 뒤 부러 정릉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이런 골목의 매력은 서로 비슷한 부분이 없단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도시는 구획에 따라 모든 길들이 계획되어 있다. 하여 아파트, 공원, 상가, 아파트, 공원, 상가. 이런 순서대로 모든 길이 정교하게, 그리고 마치 쌍둥이처럼 닮아있다. 그러나 골목은 막힌 곳에선 꺾어지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K2와 같은 공간을 마주치는 순간도 찾아온다. 다름을 인정하는 골목들을 걸으며. 오오쿠사 미노루상이 내게 개인적으로 건넸던 말을 떠올렸다. 그 사이 결혼을 했고 나중에 파티를 할 계획이니 참석했으면 좋겠다는 말. ‘정’이 느껴지는 초대 속에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서로의 정을 느끼고,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오오쿠사 미노루상이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떠올랐다. 청소년들이 버려진 쓰레기로 연주를 하는 하자센터의 놀이단 공연을 일본에서 보게 되었고, 한국이 정말 대단한 나라라 느낀 게 첫 인연의 시작이라고. 천천히 나는 그 공연을 상상해보았다. 버려졌던 물건들이 서로 다른 소리를 내며 각자의 개성을 찾아가는 일. 그러나 그것이 화음, 앙상블을 이루는 일.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악기가 되는 그러한 ‘다름의 풍경’ 나는 정릉역으로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나는 내가 쓸모없다 생각한 적이 많았다. 여전히 지금도 많다. 그런 생각 속에서 천천히 음악이 흘러나오는 걸 듣는다. 혼자가 아니고 스쳐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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