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전] 우이신설 스토리 문학 - 이설빈 작가 7~9
이설빈
2018.07.01~2018.09.30

우이신설 스토리 - 문학

 
작가가 직접 시민을 만나고 대화하며 인근 지역 이야기를 수집해 문학 작품으로 만들어 냅니다. 시민 개개인의 삶과 우이신설선이 만나 문학 작품화되어 새로운 형태의 문화예술을 경험합니다.

이설빈 작가


시를 매개로 무언가 할 수 있고 무언가 하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다.
되어버린 무언가를 읽고 될 수 있었던 무언가를 쓴다.
말을 더듬는 쪽이 아니라, 말에 더듬어지는 쪽에 서고 싶다.


과거와 미래의 합수목에서 길어 올리는 현재

 
연이재공방 김한주 인터뷰
<우이신설 도큐먼트> 노기훈 작가 사진 - 김한주


   국립4.19민주묘지입구 사거리에서 4.19로를 따라 걷는다. 늘어선 건물들 사이, 유달리 흰 벽돌기둥과 커다란 창문 그리고 그 아래 정성들여 가꾼 화단이 눈에 띈다. 나는 잠시 멈춰 선다. 창문 안쪽으로는 부드럽게 마모된 나무탁자와 조각품들, 각양각색으로 물들인 조각보와 자수들이 묘한 균형을 이루며 배치되어있었다. 누가 전시회를 열었나? 그때 한 꼬마가 맞은편의 누군가를 향해 대뜸 문제집 한 구석을 가리켜 보인다.
 
*
 
   과거와 미래의 합수목에서 길어 올리는 현재
 
   연이재공방의 김한주 씨는 바느질을 기초로 하는 전통 조각보 작업과 프랑스 자수 작업을 한다. 그는 30대 초반에 시작해 현재에는 여러 매체에 소개될 정도로 확고히 자리를 잡은 전통공예 예술가다. 조바심이 앞선 나는 대뜸 본인이 추구하는 바, 예술관을 물었다. 처음부터 이런 질문이라니, 준-프로인터뷰어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러나 잠시 생각하던 김한주 씨는 내 맥락 없는 질문에도 웅숭깊은 답변을 들려주었다.
   “전통공예라고해서 과거에만 머무르면 고루해지죠. 오히려 전통예술일수록 다양한 접근을 시도해야만 해요. 왜냐하면 전통과 현대의 만남 그리고 개인의 현재와 과거의 만남 속에 예술 본연의 가치와 의미를 담을 수 있으니까요. 인간의 회귀본능에서 나아가 우주적 차원의 그리움과 회귀를 담아낼 수 있어야 진짜 예술이죠.”
   나는 하나의 그릇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릇에 담기는 하나의 물을. 물에 담기는 하나의 파문을. 파문에 담기는 하나의 곡조와 빛을. 곡조와 빛에 담기는 하나의 시선을. 교차하고 마주보고 물들이고 흘러넘치며 이어지는 하나의 시선을. 그리고 곧 도래할 시선을 위해 과거의 그릇에서 길어 올리는 현재의 깊은 시선을.
   자연스레 내 시선은 한주 씨의 작품들이 걸려있는 벽으로 옮겨갔다. 천연색으로 물들인 조각보, 자수로 그려진 만화캐릭터 캔디와 이름 모를 꽃 등. 그중에서도 도종환 시인의 시 「흔들리는 꽃」, 나태주 시인의 시 「멀리서 빈다」가 자수로 옮겨져 있는 작품이 눈에 띄었다. 인쇄물이나 스마트폰에 출력된 활자와 달리, 한 땀 한 땀 아로새겨진 자수에서는 어떤 아련함이 우러나와 공방의 공기를 한 층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것만 같았다. 작품을 창가에 걸면 바깥에 서서 가만히 음송하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분들도 종종 있단다. 한주 씨는 만화캐릭터나 현대적 드로잉 등 다른 장르와의 콜라보가 ‘진짜 공감과 조화’에 이르는 주요한 방법이라고 일러주었다.
   “부조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은 이 상태가 가장 조화로운 모양새죠. 지금도 여러 세대가 동시에 살아가잖아요? 이 공방은 물론 전통공예 작품들도 마찬가지에요. 저는 어떤 조화, 이면의 삶, 과거와 미래의 조우하는 지점들을 드러내려 노력해요.”
 
 
   천 조각 하나, 풀 한 포기에도 이야기가 있어요
 
   나는 한주 씨의 작품들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조금이나마 더 들여다보고 싶었다. 한주 씨는 서랍에서 곱게 접힌 천들을 꺼내 한 겹 한 겹 조심스레 펼치기 시작했다. 한 천에는 새끼손가락 마디만한 바늘코로 코스모스가 청초하게 수놓여 있었고, 다른 천은 별다른 자수 없이 어느 고궁의 돌 이음새처럼 정갈하고 단단한 짜임새만으로 돋보였다. 모두 거칠고 성긴 짜임새의 흰 천이었는데 양손으로 펼쳐들면 고개가 빠끔 보일 정도의 크기였다.
   “하나는 돌아가신 시외할머니의 치마, 또 하나는 외할아버님의 모시적삼으로 만든 작품이에요. 평소 즐겨 입으시던 옷가지를 활용한 작품이죠. 천이 닳고 색이 바래고 손때 묻은 부분들이 묘한 조화를 이뤄 새로운 천으로 작업하는 것보다 훨씬 깊은 맛이 나죠.”
   이 작품들을 보고, 돌아가신 시어머니의 옷을 가져오시는 분들이 종종 있단다. 그럴 때면 옷소매 한 쪽도 안 버리고 모두 활용할 수밖에 없다고. 순간 나는 이 글쓰기, 그러니까 나와 너의 말들이 씨실과 날실로 엮여 하나의 텍스트를 이룩하는 일을 소박하게나마 돌이켜보았다. 그 일의 의미는, 텍스트라는 생태에서 ‘삶과 죽음-나와 너-지금과 그때-실재와 가상’의 분류와 고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서로를 되비추며 생동하는 차원에서 물어야하는 일이다.
   문득 나는 10년 전 오늘의 연이재공방을 비춰보고 싶었다. 연이재공방이 문을 열 당시, 이 지역에는 예술공방이 없었단다. 동네 최초의 예술공방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한주 씨. 큰 시내에서나 볼 법한 공방이 들어서니 동네분들이 많이 좋아해주셨다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공방에 얽힌 여러 아름다운 일화를 들었지만 분량 상 더 길게 다루지 못해 아쉽다. 아래는 연이재공방에 얽힌 가슴 뭉클했던 몇몇 이야기들을 한주 씨의 목소리를 빌어 하나의 ‘텍스트조각보’로 이어본 것이다.
   “어느 날엔 문고리에 검은 비닐봉지가 걸려있어요. 아무래도 전통공예 공방이니까, 할머님들이 오래 보관하던 옛날 그릇이나 옷가지 등을 봉지나 포대기에 담아 선물로 주신 거죠. 또 어떤 분은 추억을 상기시켜줘서 고맙다고 냄비에 쌀을 가져오셨어요. 줄 게 없는데 밥이라도 한 끼 해먹었으면 좋겠다면서요. 더러는 공방 앞 화분에 본인 집에 있던 꽃 한 송이를 심어놓는 분들도 있어요. 그리고 가끔 들러서 그 꽃이 잘 있나 확인하고는 흐뭇해하시죠.
   그런데 가끔 누군가 그 꽃을 훔쳐가기도 해요. 그러면 그 꽃을 심은 사람은 어떻겠어요? 세상에는 사라진 꽃 한 송이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어요. 그래서 제가 팻말을 심어놨죠. 풀 한 포기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의미니까 우리 함께 두고두고 오래 보자고요. 저는 이 공간이 단순한 공방을 넘어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들을 공유하는 장소였으면 좋겠어요.”
 
 
   우리 동네로 회개하세요!
 
   이번엔 동네자랑을 부탁했더니 자랑할 게 너무 많아 고민이라는 한주 씨. 나는 인터뷰이였던 봉사활동가 정필남 씨의 의미심장한 말이 떠올랐다. 그럼 다른 질문 하나 드릴게요. ‘정릉에서 부자가 되어서 나가면 망해서라도 다시 들어온다’는 말이 사실인가요?
   “사실이에요. 대부분 이 동네에 쉽게 들어오는데, 무언가가 이 동네에서 나갈 수 없게 만드나 봐요. 저는 그 무언가가 자연, 콕 찍어 말하면 북한산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의 명산 중 하나로 북한산을 꼽지만 동네사람들에겐 친근한 뒷산이죠. 서울에서 밤에 개구리와 풀벌레 소리에 잠들고 아침에는 새소리에 잠깨는 하루를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요?”
   번화가 쪽에서 이사를 왔다는 한주 씨는 우선 이 동네의 공기 자체가 다르다고 말했다. ‘도대체 이 동네의 출구 없는 매력이 뭘까’ 나름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았다고. 우선 시내에 나가면 가슴이 답답해지는데 수유역부터는 숨이 좀 트인단다. 그리고 4.19민주묘지역까지 오면 정말 가슴이 뻥 뚫리는 경험을 한다며, 내게도 그런 차이를 느꼈냐고 묻는 한주 씨.
   맞아요. 공기는 물론이고 제 발걸음과 마음가짐도 좀 달라져요. 현재 성남에 살고 독립을 꿈꾸지만, 어릴 적에는 정릉동에 살며 북한산 인근을 자주 오갔다는 말에 한주 씨는 ‘이제 회개하면 되겠다’며 웃어보였다. 그런데 잠깐, 회개라고요?
   “이 지역 젊은 예술가분들이 대개 성남에서 많이 오셨더라고요. 저는 그들을 두고 ‘회개했다’고 표현해요. 그만큼 잘한 일이라고요(웃음). 최근 젊은 활동가나 예술가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활발한 예술인 네트워크가 형성됐어요. 서울의 다른 지역들에 비해 물가가 안정되어있고, 북한산을 중심으로 조성된 도심 속 천혜의 환경, 활발한 지역 활동단체들, 또 구석구석 잘 뻗은 버스노선과 최근에 개통한 우이신설선 등등. 이보다 예술가들의 창작조건에 잘 맞는 곳이 없으니까요.”
 
 
   둥지가 열리는 뿌리 깊은 나무가 되기를
 
   하지만 이런 긍정적 상황의 이면을 꼭 짚어야한다는 한주 씨는 젠트리피케이션과 그에 따른 지역 공동체의 와해를 걱정했다. 현재 우이신설선 근방은 도시재생사업지역으로 선정됐고, 지역 경제를 살리려 카페거리도 조성하는 등 여러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 부지런한 개발들로 분명한 변화가 있지만, 한주 씨는 기존 지역민들의 삶과 네트워크까지 고려하는 개발이어야한다고 주장했다.
   “동네가 많이 변했죠. 공방이 있는 거리만 해도 산업화가 많이 진행되었고 이제는 토박이들보다 외부인들이 더 많아요. 이 동네가 다른 동네에 비해 좀 더 멋스럽고 맛스러웠던 건 작은 마음 하나도 나눌 수 있는 네트워크 덕분이었는데…… 예를 들어 개인적인 일로 잠시라도 공방 문을 닫으면 동네주민들이 너무나 염려해주는 풍경이 있었죠. 그런데 요새는 이해타산적인 풍경들만 보여 안타까워요. 사람 사는 멋과 맛을 해치지 않는 발전은 없는 걸까요? 이 동네가 잠시 거쳐 가는 곳이 아니라, 지역과 개인이 소통하며 깊게 스며들 수 있는 아름다운 둥지로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
 
   나는 역으로 내려가며 꽃과 열매 그리고 각양각색의 둥지가 열리는 커다란 나무를 떠올려보았다. 문화는 자연환경, 교통, 문화시설 등 유형적이며 인과적이며 이해관계적인 요소만으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무형적이고 비인과적이고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작은 노력들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 보이지 않는, 섣불리 자본으로 환산할 수 없는 실뿌리를 상상할 수 있는 힘이야 말로 ‘공존을 위한 개발’의 동력원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이렇게 열차가 도착하기에 앞서 선로를 두드리는 힘처럼, 우리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누군가를 위해 꼭 한 자리를 비워두고 또 비켜주며 미소를 주고받는 힘처럼.


온 가족이 함께 땋는 웃음 그리고 웃음들


w# (더블유샵 미용실) 위여진 & 김지민 & 로네떼 부르노 인터뷰

<우이신설 도큐먼트> 노기훈 작가 사진 - 김지민


   나는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공원으로 들어선다. 솔밭공원의 첫인상은 그늘의 여백이 은근하다는 것이다. 앉아서 펼치거나 누워서 덮기 좋은 활엽수의 넓고 분명한 그늘과 달리, 침엽수의 그늘은 거닐며 헤아리거나 기대어 흘려보내기에 좋다. 그것은 함께이면서 홀로인 시간과 홀로이면서 함께인 시선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벤치에 떨어진 솔잎을 주워 손바닥 위에 가만히 올려본다. 초록 손금 초록 빛 어깨 바람 몇 가닥 웃음이 날아온다.
   작은 광장에서 한 꼬마가 씽씽이를 타고 있다. 누군가를 향해 웃으며 달려간다. 땅을 박차는 소리가 경쾌하다. 그리고 그늘에 앉은 한 남자가 꼬마에게 미소를 건네고 있다. 나무들 사이로 여름 오후의 짙은 황금빛이 그 둘을 따사롭게 엮어주고 있었다.
 

*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단한 가족 소개 부탁드려요.
 
   여진: 가족 모두 미용을 해요. 두 딸은 물론이고 솔밭공원에서 만나셨던 브루노까지요. 로네떼 브루노는 제 듬직한 사위에요. 우선 저는 미용을 30년 이상했죠. 항상 즐기면서 일하다 보니 아이들이 자연스레 따라온 거 같아요. 두 딸 모두 프랑스로 유학을 보냈는데 결국엔 미용을 선택하더라고요. 첫째는 프랑스에서 만난 부르노와 결혼해서 지금 저와 함께 일을 하고, 둘째는 독립했죠.
 
   미용사 가족은 가훈도 남다를 거 같아요.
 
   여진&지민: 평범해요. 내가 해야 할 일이라면 즐겁게 하자.
   여진: 어차피 해야 하는 거니까요. 내가 해야 하는 거라면 즐겁게 해야죠.
   지민: 맞아요. 가끔 저와 엄마는 너무 긍정적이어서 탈인 거 같기도 해요. 특히 일에 관해서는 물불 안 가리죠. 브루노는 어때?
   브루노: 음…… (일동 웃음).
   지민: 브루노는 가족이 최우선이에요. 저는 일을 해야 가족을 돌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부분에서 가끔 충돌이 있어요. 그래도 생각해보면 이런 차이가 오히려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거 같아요. 평소에 저는 일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빠르게 움직여요. 반면에 브루노는 가족을 중심으로 조용히 움직이고 감성적인 부분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쓰죠. 하지만 저희 모녀가 긍정병에 걸려있으면 또 조곤조곤 현실적인 직언을 하는 게 부르노에요.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 순간이 있나요?
 
   여진: 우리 손녀 로네떼 수아가 저를 바라보면서 사랑한다는 표현을 해줄 때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사실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활력이죠.
   지민: 물론 일할 때요. 일하는 순간순간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게다가 우리 가족 모두가 함께 일하잖아요?
   부르노: 가족들과 함께 하는 모든 시간들이요.
 
   미용철학이나 본인만의 소망이 있다면요?
 
   여진: 고객이 마음에 들어 할 때 가장 보람을 느끼고 즐겁죠. 철학이라는 거창한 수식보다는, 그저 거짓 없이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뿐이죠. 고객들이 만족하면 감사하고 행복해요. 미용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여태 다른 직업을 가진 적도 가질 생각을 한 적도 없어요. 소망이라면, 앞으로도 미용일을 계속 하면서 가족 모두 화목하게 살고 싶어요.
   지민: 저는 엄마처럼 멋진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학교에서 존경하는 사람을 적어보라면 저는 항상 ‘우리 엄마’라고 썼어요. 사실 어릴 적에 ‘엄마는 바깥에서 미용일을 하고 집에서는 집안일을 하는 사람’으로만 생각했어요. 매일 저녁 늦게 우리가 먹을 반찬과 간식을 해두고 잠들었다가 다시 일하러 바삐 나가는 사람. 엄마는 저희와 함께 있는 시간이 부족해도 항상 저희를 위한 기본바탕을 마련하려 열심히 일하셨어요.
   여진: 사실, 딸이 미용을 한다고 했을 때 반대했었어요. 그런데 외국어를 배우라고 유학을 보냈는데도 다시 미용으로 돌아오더라고요. 피는 못 속이는 건지, 어느새 첫째도 둘째도 미용일을 하겠다고 마음을 굳혔더라고요.
   지민: 적성에 맞지 않아 고등학교를 관두고 유학을 갔죠. 그런데 홈스테이를 운영하는 주인분이 미용대학 교수시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엄마가 생각나고 또 그 분이 하는 일들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그 시절부터 미용이 제 운명이라고 생각했죠.
 
   함께 가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각자 동네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인상은 다를 거 같은데요?
 
   부르노: 예전에 의정부에 살았었는데 여기 와서는 일상의 회전속도가 빨라진 느낌이에요. 주변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일이 바빠서 그런 것 같아요. 그 빠른 변화와 바쁜 일상 속에서도 이 동네는 우리 가족이 살아가는 아주 소중한 장소죠.
   여진: 정릉에 살다가 이곳에 정착했어요. 이곳은 산동네였는데 갑자기 몇 년 사이에 급격히 현대화가 되었죠. 주변에 들어선 아파트 단지들을 중심으로요. 그래서 길 건너편 시장과 너무 극명하게 대비돼요. 또 저는 이제 미용일을 마무리해야하는 시기니까 이 미용실은 딸에게 가업을 이어주는 중요한 장소죠.
   지민: 저에게는 든든한 기반이 되는 곳이죠. 저는 이제 미용을 시작하는 단계니까요. 이 동네에서는 엄마와 비슷한 인상을 받았어요. 유학을 다녀와서는 그 대비가 확실히 체감돼요. 그런데 요즘 사람들에 대한 인상은, 이기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수아가 아기모델 활동을 하다 보니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는데 돌아오는 길에 아기가 제 품에서 잠들면 손잡이를 잡기 어려워 휘청거려요. 그런데도 자리를 양보하는 분이 극히 드물어요.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들이 서 있어도 마찬가지에요. 오히려 아주머니들이 앉을자리를 강압적으로 요구하죠. 겨우 앞에 자리가 나서 아이를 앉혀놓으면 그 작은 좌석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앉으시더라고요. 아이가 울어도 상관없이요. 프랑스도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에요. 너무 각박해진 현실 때문일까요? 하지만 그럴수록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앞서야한다고 생각해요.
 
   동네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이 어디인가요?
 
   여진: 바로 내가 있는 이곳이죠. 제가 일하는 곳이 항상 행운의 장소라고 생각해요.
   지민: 4.19민주묘지역 주변 거리요. 거리가 한산하면서도 묘한 활력이 있어요. 북한산도 가깝고 예쁜 카페들도 있죠.
   브루노: 북서울꿈의숲에 종종 가요.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잘 조성되어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산책로나 공터에 아이들이 다칠만한 요소들이 적어요. 그래서 우리 수아를 마음껏 뛰어놀게 할 수 있죠.
 
   서로에게 못 다한 말이 있다면 이 인터뷰를 빌어 말씀해주세요.
 
   여진&지민&브루노: 그런 말이 있나? 없어요. 브루노는? ……?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
   여진: 저희 가족 외에 누군가 끼어들 틈이 없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가족이 아니라면 누구에게 내 깊은 생각을 말할 수 있지?’오히려 의문이 들어요.
   지민: 맞아요. 그래도 딱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어릴 적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이 좀 더 많았더라면 좋았을 거 같아요. 이건 딸로서 엄마에게 부릴 수 있는 애교이자 투정이죠(웃음). 이제 저도 미용일을 하다 보니 그럴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엄마가 그럴 수밖에 없던 시간들을 이해해요. 또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하고요. 요새는 로네떼 수아를 보면서, 엄마가 저희를 기르면서 느꼈을 감정을 어렴풋이 느껴요. 그래서 우리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을 되도록 많이 가지려 노력하죠.
   브루노: 지민의 말에 동감합니다(웃음).
 

*

 
   인터뷰하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제 일인데요, 오히려 즐거웠습니다. 머리가 꽤 기네요. 그런가요? 아무 생각 없이 기르고 있는데, 이참에 저도 머리를 다듬을까요? 아니다, 파마를 할까요? 하고 싶은 대로 해야죠. 그 순간은 돌아오지 않으니까. 여진 씨는 빙긋 웃으며 브루노 씨를 바라본다. 브루노 씨가 가운을 가져오자 지민 씨가 묻는다. 아이스크림 드시겠어요? 우리 수아도 아이스크림 먹을래?
   나는 세 번째 거울 앞에 앉는다. 거울에서 거울로 건너뛰는 한 꼬마가 보인다. 보폭이 경쾌하다. 예쁘게 땋은 머리에 윤기가 흐른다. 나는 이곳을 한 타래로 엮어주는 순간의 빛을, 순간의 단어들을 바라본다. 수아 메로나 손등 연둣빛 가르마 웃음 그리고 웃음들.



사랑의 음식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


대성원(중국음식점) 손현정 & 양준모 인터뷰
<우이신설 도큐먼트> 노기훈 작가 사진 - 양준모
 

   이 동네 토박이시라고 들었어요. 동네의 역사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계실 거 같아요.

   준모: 그렇죠. 어머니와 저는 여기서 40년째 살고 있으니까요. 지금은 아파트촌이 들어섰지만 예전에는 달동네였어요. 오늘처럼 날씨가 흐린 날에 외상값을 받으러 물어물어 찾아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부모는 없고 아이들만 있더라고요. 부모가 도망을 간 건지, 그 며칠 동안 챙겨 먹지 못해서 아이들 몰골이 말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라면이나 통조림을 사주고 내려왔던 적이 있어요.
   현정: 예전에는 자전거도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계단, 골목, 언덕이 많았어요. 핸들이 하나만 달린 자전거로 배달하던 시절이었죠. 아마 강북구내에서 오토바이 배달을 시작한 집이 우리 가게일 걸요? 배달원이 아침 8시부터 저녁도 거르고 배달하던 시절이었는데, 그게 너무 안쓰러워서 오토바이를 사줬죠. 그런데 우리 배달원 왼손잡이라 오토바이를 개조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 욕 무진 먹었죠. 그깟 배달하는 사람한테 뭘 그렇게까지 해주냐고. 지금도 갑질이라는 게 있지만, 당시엔 말도 못했어요. 다 같이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그러면 쓰나!
   준모: 기초생활수급자분들이 많이 살던 동네에요. 지금의 래미안아파트 있던 곳이 그랬죠. 약 30년 전에는 택시를 타고 삼양사거리로 가달라면 기사님들이 손사래 치던 곳이에요. 요금을 두 배로 준다고 해도 가지 않았죠. 지금의 CGV영화관 자리가 예전에는 미아리 대지극장이었는데, 거기서 조금만 더 들어가 달라고 사정해야 갈 수 있는 곳이었어요. 치안이 나빴기 때문이죠. 예전에 이슈였던 퍽치기라든가 폭력배들 때문에 여성분들이 밤늦게 돌아다니는 건 상상도 못했는데, 요즘은 완전히 바뀌었어요.
   현정: 아파트 들어서면서 거의 물갈이 되었다고 봐야죠. 예전에 비하면 치안은 좋아졌는데, 오밀조밀 붙어있는 이웃 간의 정이랄까 그런 좋은 것들도 없어져서 씁쓸해요.
 
   사실은 w#(더블유샵)미용실에서 대성원이 이 동네 맛집이라고 추천하셨어요. 또 좋은 일도 하신다고요. 정확히 어떤 일들을 하시나요?
 
   준모: 하하, 파마 하셨구나! 어쩐지 머리에 눈길이 가더라니. 저희는 강북구 구세군에서 관할하는 편부모가정, 독거노인,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에 무상외식사업을 해요. 매달 마지막 금요일 네 가정씩. 구세군에서 미리 희망 메뉴를 받아서 해당 음식점들에 알리죠. 보통 도움을 받은 지인이나 친구분들을 대접하는 게 소망이시더라고요. 예전에 어머니는 사랑의 도시락배달을 하셨고, 저도 다른 구에서 봉사활동을 했었어요. 구세군활동을 한 지는 2년 정도 되었죠. 한 3년 전에는 강북마을 봉사대를 만들어서 음식점들끼리 활동했죠. 한 달이나 두 달에 한 번 약 십 만원씩, 기념일엔 이십 만원 고아원이나 노인정에 음식을 해드렸어요.
   현정: 당장 먹을 게 없는 분들. 길거리 지나가다보면 노숙자분들이 작년까지만 해도 몇몇 계셨어요. 그런데 막상 돈을 주면 그 돈으로 밥이 아니라 술을 사 드셔요. 그래서 돈을 쥐어드리지 않기 시작하니까 다른 곳으로 가신 건지 아니면…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프죠.
   준모: IMF 이전에는 어머니께서 몸이 불편한 분들을 많이 도왔어요. 요새는 사랑의 도시락, 미혼모 가정에 금전적인 후원도 하세요. 어렸을 적부터 이런 선행들을 보고 자라서 저에겐 봉사가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현정: 뭐, 별 게 있나요? 내가 할 수 있을 때 나누는 거죠. 우리가 음식 만들 줄 아니까 음식을 나누는 거지. 그래도 내가 자부심을 느끼는 게 있는데, 남자들도 버거워하는 중국요리를 나는 직접 요리한다는 것. 그게 아마 젊음의 비결이겠죠(웃음). 또 하나 비결이 있다면, 절에 다니는 것. “부처님 기 받아갑니다~” 하고 절에 다녀와요. 다들 놀라죠. 음식장사하면서 절에 가서 청소하고 봉사하고 그게 체력적으로 가능하냐고요. 하지만 오히려 힘이 나요. 신기하죠? 아침에는 못 일어날 거 같고 저녁에는 파김치가 되는데, 막상 절에 가거나 봉사하러 길을 나서면 걸음도 빨라지고 괜히 웃게 된다니까요?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나누는 게 봉사에요.
 
   오늘은 제가 아주머님 기 받아갑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봉사활동과 음식점 운영을 해오시면서 어려운 일들을 많이 겪으셨을 거 같아요.
 
   준모: 왜 없겠어요. 하지만 봉사활동이나 음식점 운영 자체가 문제였던 건 아니에요. 저희가 중국음식을 한 지 40년이 되어가지만 이 자리에서는 6년째에요. 예전에 성호아파트 앞에서 장사를 했는데, 9시 뉴스에 나올 만큼 큰 화재가 발생해서 전소된 적이 있죠. 폐허가 된 건물에 주저앉아 죽을상을 하고 있는데, 웬 폐지 줍는 할머니가 폴리스라인을 넘어서 전깃줄, 수도배관, 가스배관을 다 뜯고 계시더라고요. 경고를 해도 당장 내가 필요하다는데 무슨 상관이냐며 막무가내였어요. 그 일을 겨우 추스르고 이 동네에 자리 잡은 거예요.
   언제는 이삿짐을 나르고 있는데 어떤 분이 보자기를 챙기고 계시기에 옆방 사람인가 해서 물어보니, 쓰지 않을 거 같아서 그냥 들고 가려고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보자기엔 멀쩡한 옷가지와 스텐리스 그릇이 들어있었죠. 그래서 배달음식점에서는 어지간하면 스텐리스 그릇을 쓰지 않아요. 찾으러 가면 어느새 사라져있거든. 그런 분들 때문에 바르게 열심히 사시는 분들에게 선입견이 생기는 거 같아 속상하죠.
   예전에는 가짜 대성원도 있었어요. 어느 날 단골이 전화를 하더니 요새는 왜 전화도 잘 받지 않고 맛이 변했느냐고 하시더라고요. 알아보니 전단지를 똑같이 만들어서 전화번호만 바꾼 거 있죠? 어떻게 할까 벼르던 중에 그 가짜 대성원이 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당시엔 마냥 분노했지만, 생각해보면 저희 진짜 대성원이 그만큼 원조라는 거 아니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할 수 있는 건 찾아주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짐작할 수 있는데요. 특히 기억에 남는 단골들이 있나요?
 
   준모: 그럼요! 화재가 난 뒤에 안부를 물으며 직접 찾아오는 분들도 계실 정도죠. 단골집 중에서도 송천초등학교 다니는 꼬마 아가씨 집이 가장 먼저 기억나네요. 지금 한 초등학교 3학년 쯤 되었나? 배달을 가면 항상 본인 먹을 간식거리를 준비해서 제 손에 쥐어줘요. 사탕이나 젤리 같은 거. 그 집 주문전화를 받을 때마다 기분이 좋죠. 엄마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 꼬마가 자기가 먹는 걸 아껴뒀다가 제게 준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지죠. 그래서 저도 그 집에 배달 갈 때면 초콜릿을 준비해요.
   또 올해 취직한 스무 살 아가씨. 그 여학생이 중고등학교 졸업하는 걸 지켜봤죠. 거의 2, 3일에 한 번은 배달을 갔어요. 항상 짬뽕만 먹었는데, 지금도 길에서 마주치면 큰 소리로 인사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자기는 수능 안 본다고 좋아하더니 지금은 취직해서 야근에 시달리는 걸 보면 웃기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하죠.
   무엇보다 이 동네는 지나가는 꼬마들이 인사성이 밝아요. 지나가면서 “안녕하세여 아저씨!” 먼저 해맑게 인사를 건네요. 다른 동네 꼬마들은 몇 번씩 마주쳐도 데면데면한데 이 동네 꼬마들은 스쳐가는 사람일지언정 먼저 인사를 건네요.
 

*

 
   인터뷰도 끝났겠다, 40년 전통의 맛을 그냥 지나칠 수 없죠. 그런데 짜장이냐 짬뽕이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아니, 둘 다 드시면 되지! 짬짜면 몰라요? 아니면 제일 비싼 걸로 시키시든가. 우선 이 물 좀 드셔요. 홍삼 등등이 들어간 특제 물입니다.
   주방에서는 야채 볶는 소리가 바깥의 빗소리와 함께 촤아악, 쏴아― 들려오기 시작했다. 모서리가 닳은 테이블 두어 개와 오래된 메뉴판이 맛을 보증해주는 것만 같다. 곧 두 쪽으로 나뉜 그릇에 짜장면과 짬뽕이 담겨 나온다. 나는 짬뽕파이므로 우선 가볍게 홍합을 얹어 국물을 들이킨다. 미미(美味)! 군더더기 없이 매콤짭짤한 깊은 국물에 볶은 야채의 불맛이 어우러진, 정성들인 ‘짬뽕의 정석’맛이다. 그리고 짜장은 보통 짬뽕과 함께 먹으면 짬뽕국물의 맵고 짠맛에 조연으로 밀리기 마련인데, 이 짜장은 먹으면 먹을수록 볶은 양파의 아슬하고 깔끔한 단맛이 고기와 면을 감싸고 그윽하게 맴돌아 젓가락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역시 ‘사랑의 맛’에는 사랑의 절도가 열렬하게 배어있는 것이다.*
   카페에서 글을 쓰는 쌀쌀한 초가을 밤, 내 앞에 차가운 커피 대신 그 따뜻한 짬뽕국물이 있으면 참 좋았을 걸… 나는 입 안 가득 고여 있는 침을 삼킨다.
 
 

<우이신설 스토리 인터뷰 후기>

 
   사전에서 ‘의미’라는 단어는 현상이나 대상이 갖는 뜻과 가치에 닿는다. 이때 ‘가치’는 중요성과 목표라는 단어를, ‘목표’는 대상을, ‘대상’은 다시 내가 목표로 하는 무엇이라는 의미에 닿는다. 이 단어들은 서로를 참조하며 ‘의미망’을 형성한다. 결국 의미라는 것이 이러한 언어적 ‘연결’이라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가치들과 관계를 맺는 우리 자신들의 고유한 연결, 즉 ‘표현’이다.
   표현은, 어떤 의미를 발생시키고 심화하고 실천하고 실험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연결방식이다. 따라서 자기를 표현하는 일은 그 누구보다도 우리 자신에게 위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장 첨예한 자기참조이자 실존적 행동’이다. 그러니 부디 스스로를 인터뷰해보자. 남들이 듣거나 읽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자신이 묻고 듣고 읽고 그 대답을 살아내는 게 중요한 거니까. 내 최초의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어떻게 나인가?”
   ‘당신은 어떻게 당신입니까?’
 
   지하철 노선을 다시 살펴본다. 색색의 뿌리들이 얽혀있다, 길거나 짧게 서로를 에두르거나 관통하면서. 나는 내가 서 있는 장소를 가만히 짚어본다. 그리고 내가 가야하는 장소를 짚어본다. 내가 출발할 곳과 내가 도착할 곳 사이에는 3개의 환승역, 많은 역들, 그보다 더 무수한 흔들림과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내가 당신을 만나는 순간과 당신을 생각하는 시간 사이에는, 몇 개의 현재와 몇 겹의 내가 서 있다는 걸까?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다는 걸까?
   노트북을 덮는다. 실핏줄 도드라진 덜컹이는 눈을 감는다. 이제 나는 이 글을 보는 당신의 눈꺼풀 깜빡이는 찰나를 빌린다. 그 어두운 찰나, 이 어두운 터널을 지나며 나는 이 조야한 글 너머로 나아간다. 그리고 무성한 맥락을 뻗어가는 뿌리와 날개의 차원으로 연결된다. 나와 너는 거기서 만나자, 서로를 알아보자, 되비추며 아름다워지자, 따로 또 함께 생동하는 우리의 순간들을 온몸으로 표현하자.



* 김수영의 시 「사랑의 변주곡」에서.
* 김수영의 시 「사랑의 변주곡」 변용.
   “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 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절도는// 열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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